풍경&접사

속사골에서 본 달

인생은 아름다워77 2014. 2. 11. 09:46

대관령 너머로 흩날리던 눈발이 많이 약해졌지만 이른 아침부터 기대한 날씨는 아니었다.

천체관측이 있는 날.

강릉엔 폭우처럼 내리쐬는 눈발에 도시는 마비되었고, 그 중량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실감나게 느껴졌다.

새벽 바람에 바람이라도 불었더라면 그야말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무섭도록 극악한 날씨였다.

 

아침 출근길 커피 한 잔 마시고 나니 마실 나온 아이마냥 해가 봉긋하게 올라온다.

시골 아이들에게 천체교육이라는 것을 실시하는 첫 해다.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작은 망원경 하나 가지고 올 엄두도 못내다가 일단 벌리고 보자는 심산으로 천체교육을 진행했는 데 어째 아침부터 삐그덕이다.

 

오후를 보내고 나니 크게 기대할 상황은 아니다.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고 자그마한 눈 알갱이들이 소리없이 곱게 흩날린다.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었던 날씨에 대한 희망이 사그러져 가고 있었다.

 

만남과 이별을 아쉬워하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조금씩 추위가 실감나게 느껴지던 시각.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 보니 '와우!' 하는 감탄사가 절로 스며 나온다.

휘엉청 밝은 달이 내 머리 위에 숨죽여 올라와 있지 않은가!

어둠이 짙어갈수록 태양빛의 기를 받은 달이 감춰둔 모습을 하나씩 꺼내 펼친다.

 

'그럼, 그렇지. 하늘이 그렇게 쉽게 우릴 저버리진 않겠지.'

 

예전부터 자주 본 달이지만 달의 바다, 토끼, 협곡 등이 렌즈를 통해 시야에 들어오니 그야말로 장관이다.

자주 봐도 볼 때마다 즐겁다.

실감나게 눈앞에서 본 아이들의 입에서도 감탄사가 흘러 나온다.

뭐그리 대단한 감동은 아니었을지라도 그들의 가슴에 살포시 오늘 본 달이 가슴에 남았으면 좋겠다.

 

잔잔하지만, 고요하지만, 은은하게 그 아름다움을 뽐내는 달을 보니

우리네 사람들도 좀더 자주 보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자기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는 세상이다.

나의 생각은 정당한데 타인의 생각은 뭔가 모르게 잘못되어져 있는 세상이다.

나는 잘하는 데 남은 왜그리도 서툰 지 헛웃음만 내는 세상이다.

이 세상이 하나같이 자기로부터 시작되니 그 중심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저 자연의 모습.

생색내기에 바쁘고 타성에 젖어 자신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일침이라도 되어야 할텐데.....

 

나도 침 한 방 맞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든다.

 

 

[20140210 속사골에서 본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