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오락가락하는 내리는 폼이 어째 제 마음같기도 합니다.
자주 오가는 길은 아니어서 낯선 길이라 하겠습니다.
낯선 길에 서서 잠시 고개를 들어 봅니다.
머얼리 보이는 빗살과는 달리 바로 눈 앞 빗방울은 마치 눈덩이 같습니다.
안약이 막 떨어져 눈에서 일어나는 무조건반사와 같은 깜박임에 잠시 놀래 봅니다.
맞아보니 나름 괜찮습니다.
생머리였을 땐 비맞은 생쥐 꼴이 영 눈에 차지 않았지만 퍼머를 하고부터는 눈비를 제법 맞아도 큰 신경이 쓰이지는 않습니다.
여고생으로 보이는 한 학생이 잰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고부터는 이 보도블럭 위로 지나는 이를 보질 못했습니다.
오래 머무르지 않아 그랬던 것이겠지요.
준비한 우산을 펼치려다 오늘만큼은 슬며시 내려 놓습니다.
오늘 우산은 선생님이 그날그날 챙겨오라는 학습준비물처럼 의도한 준비품이었지만 사용을 할 생각은 아직 없습니다.
가만히 서서 비를 맞고 나니 어느새 23년 전 추억의 대학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생겨 잘못 밟으면 종아리쪽으로 흙탕물이 튀겨 그나마 깨끗해 보이는 물을 손바닥으로 담아 툴툴 털어내곤 했었습니다.
가끔은 비를 맞으며 기숙사로 돌아가던 길이 무척이나 좋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 때 그 사람이 이젠 사회인으로 당당히 서서 이 낯선 길 위에 놓여 있습니다.
느즈막한 기다림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비를 좀 맞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듯 합니다.
펼치지 않은 우산이 여전히 점포 앞 귀퉁이 간판 아래 기울어 세워져 있는 밤입니다.
행여 누가 볼새라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이 인적 드문 거리에 서니 청승맞다는 생각은 한달음에 도망가 버렸습니다.
짧은 시간 청람벌 나무 아래 거센 비 피하던 그 때 그 시절을 그리워해 봅니다. ^^
[스마트폰으로 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