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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에서

이상한 포도쨈 만들기

필수품을 사야 해서 주중 저녁에 잠깐 마트에 들렀었다. 고급(?) 포도라 불리는 샤****이나 거봉, 사각사각 씨없는 포도 등 여러 종류의 포도 중에서도 난 특히 캠벨을 좋아한다. 포도라고 하면 90% 이상을 캠벨로만 채우는 터라 장을 봐오면 가족 중에서 오로지 혼자만 먹는 유일한 과일이다.

팔리지 않은 3kg 한 상자가 만원대 초반에 나왔기에 군말없이 한 상자를 들고는 집에 와서 모조리 냉장실에 넣어 두고 마지막 한송이를 깨끗이 씻어 먹어 보았다. 믾이 익어서 흐물흐물해진 포도도 있어 좀 두면 탱글해지겠지 싶어 가만히 두었더니 상태가 영 말이 아니었다.
냉장실에 넣어둔 포도를 모두 꺼내 세척을 하고 도전한 것이 바로 포도쨈이다.
지난 번에 백설탕을 사두었기에 맛있는 포도쨈을 만들리라 다짐하며 검색을 통해 유사한 레시피 몇 개를 종합해 만들기에 들어갔다.

먼저 씻은 포도를 물기를 빼고 중불에 끓여 주었다.
길지 않은 시간에 껍질과 알맹이가 분리되어 고운 빛깔을 보여주었다. 아! 이게 되는구나 싶어 내심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나무주걱으로 살살 저어주며 분리작업을 하다가 알갱이를 살짝씩 으깨어 주었다. 여전히 멋진 빛깔이다.


내용물이 걸죽해지자 레시피대로 체에 걸러 고운 엑기스만 추출해 보았다.




맛을 보며 설탕을 넣아야 하는데 맛볼 생각이 없어서 그냥 원액의 50% 정도를 눈대중으로 븟고 천천히 저어주었다.


그런데 색에 비해 오래도록 끓여주어야 하는데 부피가 줄지 읺아 불을 약간 세게 올리고 열심히 휘저었다.


계속 저어주는 데 포도냄새가 아니라 달고나 냄새가 난다고 딸아이가 살짝 우려 섞인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진행된 듯한 느낌에 저어주기를 그만두고 베란다로 내놓고 굳기를 기다렸다. 시범삼아 떨군 포도쨈이 물에 퍼지지 않고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주걱으로 여전히 흘러내리는 모습에 열심히 더 끓였더니........

붉은 빛은 온데간데 없고 달고나 색의 이상한 포도쨈이 만들어졌다. 그래도 맛은 좋을거야 하며 젓가락으로 살짝 떠내어 맛을 보니 완전 물엿이다. 포도는 어디로 간 지 알 길이 없고 끈적끈적한 물엿만이 남아 내게 상처로 남아 버렸다.




결국 포도쨈 만들기가 아니라 무른 포도 버리기를 두 시간 이상 한 셈이다.
아! 참 안타까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