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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접사

오죽헌에 가보자

2007. 01. 19

겨울의 오죽헌은 어떠한가!

오죽헌(烏竹軒)은 최응현의 집이었는데 사위 이사온(李思溫)에게 상속되었다가 이사온 딸인 용인 이씨 에게 상속(相續)되었다. 용인 이씨는 신명화(申命和)와 결혼하여 다섯 딸을 두었는데 그 중에 둘째가 신사임당이다.
신사임당은 서울사람 이원수(李元秀)와 결혼을 하였으나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하여 친정(親庭)에서 지내는 때가 많았기 때문에 율곡선생(栗谷先生)도 이 집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용인 이씨가 90세로 세상을 떠나자 분재기(分財記)에 따라 율곡의 이종사촌 동생 권처균(權處均)에게 상속(相續)되었다.

http://www.ojukheon.or.kr/index.htm 참조

우선 오죽헌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주차장의 주차비는 소형, 승용의 경우 1000원이고, 입장료는 대인 기준 2000원이다.

입장을 하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경내로 들어가기 전에 나타나는 공원처럼 꾸며진 '신사임당 초충도 화단'이다.

이곳은 관람객들의 휴식공간이기도 하지만 봄에서 가을까지는 웨딩촬영지로도 각광을 받는다.

신사임당의 여덟개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오이, 둥근어질풀, 수박, 가지, 맨드라미, 가선화, 봉선화 원추리를 소재로 실물화단을 조성하였고, 사임당의 섬세한 관찰력이 어떻게 붓끝에서 표현되었는지 둘러보며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자경문은율곡이 어머니를 여읜 채 상심하여 19 세에 불교를 연구해 보려고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가 20 세 되던 해 봄에 강릉의 외조모가 계신 곳으로 돌아 나와, 자기 수양의 조문을 삼고자 지은 글을 자경문이라 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먼저 그 뜻을 크게 가져 '성인'으로서 표준을 삼아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한 동안은 내 할 일이 끝난 것 아니니라.

2. 마음이 안정된 사람은 말이 적다. 그러므로 마음을 안정하는 것은 말이 적은 데서부터 비롯하느니라. 말할 만한 때가 된 다음에 말을 한다면 그 말이 간략하지 않을 수 없느니라.

3. 오래도록 놓아버렸던 마음을 하루 아침에 거두어서 힘을 얻는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느냐. 마음이란 산 것이라. 안정된 힘이 이뤄지지 못하면 흔들려서 편안키 어려우니라. 만일 생각이 어지러울 적에 그게 귀찮아 마음 먹고 끊어버리려고 한다면 점점 그 어지러운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며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같음을 느끼리라. 설혹 그것을 끊어버린다하더라도 다만 그 끊어버렸다는 생각이 가슴 속에 가로 놓여 있다면 그 또한 허망한 생각이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생각이 어지러울 때에 있어서는 정신을 가다듬어 가만가만 다룰 것이요, 그 생각에 이같이 애쓰기를 오랫동안 하느라면 반드시 차분히 안정되는 때가 있을 것이니, 무슨 일을 하든지 전심 전력해 한다면 그 또한 마음 안정시키는 공부가 되느니라.

4. 언제나 조심스레 경계하고 혼자 있을 때에 삼가는 뜻을 가슴 속에 품은 채 시시각각 게으르지 아니하면, 모든 삿된 생각이 저절로 일어나지 못하리라. 만 가지 악이 모두 다 혼자 있을 때에 삼가지 않는 거기서 생겨나느니라. 혼자 있을 때 삼갈 줄 안 다음에라야 참으로 저 자연을 사랑하며 즐길 수 있는 고상한 뜻을 알 수 있느니라.

5. 새벽에 일어나서는 아침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밥 먹은 뒤에는 낮에 할 일을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어서는 내일 해야 할 일을 생각할지니, 만일 일이 없으면 그만두려니와 일이 있으면 반드시 적절하게 처리할 방법을 생각해 낸 다음에 글을 읽을지니라. 글을 읽는다는 것은 옳고 그름을 분간해서 실천에 옮기려 하는 것이니 만일 사물을 살피지 않고 오똑 앉아 글만 읽는다면 쓸데 없는 학문이 되느니라.

6. 재물, 영예, 그건 설사 그 생각을 쓸어 버릴 수 있다 하더라도 만일 일을 처리할 적에 털끝만큼이라도 편의한 것을 택할 생각을 가진다면 그 또한 이익 탐하는 마음이니 더욱 살펴야 할지니라. 무릇 일을 만났을 적에 만일 해야 할 일이어든 정성껏 하되 싫증내고 게을리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되며, 또 안 해야 될 일이라면 딱 끊어 버려 가슴 속에서 옳고 그른 것이 서로 싸우게 하지는 말지니라.

7. 언제나 저 맹자에서 이른바 '한 가지 옳지 못한 일을 행하고 한 사람의 죄없는 이를 죽이고서 천하를 얻는대도 하지 않는다.'는 그 생각을 가슴 속에 간직할지니라.

8. 횡액과 역경이 닥쳐올 적에 스스로를 돌이켜 보아 깊이 반성함으로써 저쪽을 감화하도록 할지니라.

9. 제 집안 사람들이 감화되지 못한다는 것은 다만 성의가 모자라기 때문이니라.

10. 밤에 잘 때나 아픈 때가 아니면 눕지 않아야 하고 비스듬히 기대지도 말 것이며 또 밤중일지라도 졸리는 생각이 없으면 눕지 말되, 다만 억지로 할 것은 아니니라. 그리고 낮에 졸음이 오면 마땅히 정신을 차려 바짝 깨우칠 것이요, 그래도 눈까풀이 무겁거든 일어나서 두루 거닐어 깨도록 할지니라.

11. 공부에 힘쓰되 늦추지도 말고 바재지도 말며, 죽은 뒤에야 그만 둘 것이니, 만일 그 효과가 빨리 나기를 구한다면 그 또한 이익 탐하는 마음이니라. 만일, 이같이 아니 하면 어버이에게서 물려 받은 몸뚱이를 욕되게 함이라. 그게 바로 사람의 아들 된 도리가 아니니라.

(http://guilbut.netian.com/it-8.html)






자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유적정화기념비가 눈에 띈다.



기념비를 보고서는 고개를 죄로 약간 돌리면 경내로 들어가는 문이 보이는데 그곳으로 들어가자 보이는 곳이 바로 문성사와 오죽헌이다.






문성사는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 때 율곡이이 선생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문성"은 1624년 인조임금이 율곡선생에게 내린 시호로, '도덕과 사물을 널리 들어 통했고 백성의 안위를 살펴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율곡 이이 선생 영정은 1975년에 표준영정으로 선정된 것으로, 이당 김은호가 그렸다. 선비들의 평상복인 심의를 입고 검은색 복건을 쓰고 있다. 현판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





오죽헌은 너무도 유명하여 달리 설명한 부분이 없지만 간단히 오죽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오죽헌은 원래 수재 최응현의 집이었는데, 둘째 사위인 이사온에게 상속되었다가 이사온의 딸인 용인 이씨에게 상속되었다. 용인 이씨는 딸을 다섯 두었는데, 재산을 물려줄 때 둘째 딸의 아들 이이에게는 조상의 제사를 받들라는 조건으로 서울 수진방 기와집 한 채와 전답을 주었고, 넷째 딸의 아들 권처균에게는 묘소를 보살피라는 조건으로 오죽헌 기와집과 전답을 주었다. 외할머니로부터 집을 물려받은 권처균은 집 주위에 검은 대나무가 무성한 것을 보고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 했는데, 이것이 오죽헌의 유래가 되었다.

오죽헌은 조선전기 민가의 별당에 해당하는 건축물이다. 조선전기 주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구조적 가치 외에도, 이 곳 몽룡실에서 율곡 이이가 태어남으로써 더욱 유서 깊은 곳이 되었다. 1963년 1월 31일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관람을 하고 나면 문성사 왼쪽으로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 본다.

그곳으로 들어가면 바깥채와 안채가 보인다.

바깥채는 주로 신사임당의외할아버지와아버지, 남편이 주로 거처를 한 곳이라고 한다.

부엌이나 아궁이등을 통해 옛 조선시대의 생활모습을 살펴볼 수도 있다.
















쪽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으로 높게 지어진 어제각을 볼 수 있다.

어제각은 율곡 이이 선생의 <격몽요결>과 어린 시절 사용했던 벼루를 보관하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1788년 정조는 율곡이 어렸을 적 쓰던 벼루와 <격몽요결>이 오죽헌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듣고, 그것을 궁권ㄹ로 가지고 오게하여 침히 본 다음, 벼루 뒷면에는 율곡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글을 새기고, 책에는 머릿글을 지어 잘 보관하라며 돌려 보냈다. 당시 임금의 명을 받은 강원도 관찰사 김재찬이 이를 보관할 수 있는 집을 지었는데 바로 이것이 어제각이고 현재의 5000원권 지폐에는 바로 율곡의 초상화와 벼루, 문성사, 오죽헌(몽룡실)이 도안되어 있다.









오죽헌 경내는 이렇게 이루어져 있고 바깥문을 통해 밖으로 나오면 우측으로 율곡기념관을 볼 수 있다.

오늘은 들어가 보질 못했다. 오죽헌에 도착한 시간이 벌써 4시 30분이 거의 다 되었기 때문이다.

행장기와 입지문은 크고 작은 문으로 직접 가서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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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기행이었는지라 별스럽지도 않은 관람만 하고 왔네요.

다음 기회에 오죽헌의 봄, 여름, 가을을 차례대로 살펴보고 눈을 좀더 높이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죽헌 구경 많이 오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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