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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접사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기행 2일 / 월영교, 신세동벽화마을, 하회마을, 군자마을

꽤나 피곤했었나 보다. 여섯 시부터 맞추어 놓은 알람친구 세 명이 나를 부지런히 깨웠나 모르겠는데 어쨌든 난 자의로 일어난 기억 밖에 없다.
긴 점퍼는 제쳐두고 따로 준비해 간 패딩을 입고 나갔다가 안동 날씨를 너무 우습게 본 벌을 톡톡히 받았다. 같은 기온인데도 마른 바람이 옷깃을 헤치고 들어오는 것이 칼칼함에 온 몸이 추웠다. 손 끝은 얼고 이러다 동사라도 할까 싶어 잠깐 촬영 후 얼른 자리를 파했다.
이른 새벽 거울처럼 미동도 않는 월영교의 반영과 안개를 기대했다가 된서리만 맞았다.

어느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이 간직되어 있는 국내 최대 목책인도교인 월영교는 말그대로 나무로 된 다리이다.  먼저 세상을 등진 남편을 위해 머리카락을 뽑아 한 켤레의 미투리를 지은 지어미의 애절하고 숭고한 사랑을 기념하고자 미투리 모양을 담아 다리를 지었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가 드론 배터리 충전을 시키고는 뜨거운 물에 온 몸을 푹 적시고는 커피 한 잔 들고는 다음 갈 곳을 생각해 본다.
안동에 오면 늘 가보는 곳이 하회마을과 도산서원이었는데 이번에는 두어 군데를 포함하여 다녀보기로 했다.
이제 신세동벽화마을로 가보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벽화마을 중 내가 제일로 치는 곳이 바로 해안가 옆 트래킹 바닷길이 한 눈에 보이는 부산의 흰여울길이고, 그 이전에는 감천동 문화마을이었는데 신세동벽화마을은 어떤 느낌일까 무척 궁금했다.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진 마을 담벼락에서 전통의 도시에서 맛보는 색다른 풍경이다. 그다지  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니고 굉장히 인상적인 모습을 기대한다면 추천하고 싶지 않지만 짧은 산책로 마실 가듯이 간다면 나름 조용하고 소박한 운치를 맛볼 수 있는 느낌 정도이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렸을 적 동네 어귀에 있었던 전봇대를 돌며 친구들과 숨바꼭질고 하고 다방공도 했던 흐뭇한 추억이 돋아난다. 산동네였던지라 물이 상수도 배관을 타고 올라오지 못하는 날이나 수도공사에서 공사라도 하면 유일하게 언덕 위에 있던 수도펌프에 모래를 가득 채워 유일한 식수원을 망가뜨린 추억도 있다. 요즘에서야 방사능 물질이 나온다거나 유해한 성분 때문에 너나할 것 없이 꺼리기는 하지만 우리네 가슴속엔 여전히 급할 때 찾는 숭늉 이상의 가치였다. 펌프 작대기를 힘껏 저어 물을 나오게 해보니 갑자기 어렸을 적 내가 다시 태어났다.

혼자여행을 갈 땐 삼각대가 필수이다. 그다지 매력이 없는 외관 탓에 셀프샷은 가급적 자제하는 편이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추억의 장바구니에 나를 좀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에 가끔 찍곤 한다. 물론 사람들이 많은 곳은 여전히, 앞으로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남은 여정지가 군자마을과 하회마을인데 신중하게 선택을 해야 했다. 하회마을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반대편에 있고, 군자마을은 귀가 길에 놓인 곳이지만 고속도로를 타지 못하고 가야 하는 애매한 상황이다. 편한 만큼 오십여 킬로미터를 더 가야해서 결국 하회마을을 들러 군자마을로 이동하는 코스로 선택했다.

안동하면 대표적인 전통관광지로 제일 꼽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하회마을이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모여 사는 동족마을로 안동 출신의 시족으로는 가장 손꼽히는 명문대가이다. 하회의 지명 유래와 역사적 흐름을 살펴본다면 좀다 흥미롭게 마을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안동'은 양반의 도시라고 한다. 고려 말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인재 대부분이 영남지역의 안동에서 많이 배출되었다고 하는데,   외가 가문인 안동권씨는 고려 말부터 기반을 다져 조선조에서는 문과 급제자 359명, 왕비 1명, 부마 2명, 상신 8명, 대제학 3명, 호당 6명, 청백리 1명, 공신 17명을 배출했다고 하는데 이는 국성인 전주이씨를 제외하고 단연 수위였다고 한다.

돌아가는 물줄기 너머로 부용대가 보인다. 부용대 전망대에서는 하회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시간이 제법 흘러 4시가 훌쩍 넘어간다. 귀가시간도 꽤나 걸릴 듯 싶은데 해넘어 가기 전에 얼른 군자마을로 향해야 했다. 군자마을을 지나 도산서원까지 가보면 좋겠지만 이미 지난 번 외할머니 인부 인사를 하러 왔을 때 이미 들렀던데다 오늘은 그렇게 시간이 많지도 않아 짐깐 들러 구경만 하고 가기로 한다.
하회마을을 보고 간 군자마을은 그야말로 작은 기와집으로 이루어진 마을이었다. 약 600여년 전 광산김씨 김효로와 그 후손이 정착하며 만들어졌는데, 20여 채의 고택이 후손들에 의해 보존이 잘 이루어진 느낌이었다. 행실이 바르고 학문이 깊은 인물이 많이 배츨되었고, 한 마을에 군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 하여 군자마을이라 불린다는 유래가 있다.
잘 정돈된 고택에서 느껴지는 전통의 풍미와 주변 자연환경이 그야말로 절색이라 집 한 칸 장만해주면 여기에서 못살 이유가 없을 것 같은 매력이 느껴진다.

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나니 이젠 제법 긴 시간 운전대를 잡고 쉼없이 집으로 가려 했다. 잠깐이라도 어디 들러 가면 오늘 내로 집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겠구나 싶어 애초에 편의점에 들러 간단히 먹거리를 사고는 그.자리에거 바로 달렸다.

오디오 버튼을 누르다 지난 12월에 들으면 좋을 것 같은 음악들이 담긴 시디가 눈에 띈다. 평소 좋아하는 곡들이라 친숙하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졸기라도 할 것 같아 돌아가는 길 내내 음악을 힘께 따라부르며 가기로 했다.

봉화군을 지나 태백에 들어서니 삼척 하장길로 안내한다. 다니다가 본 자동차는 고작 대여섯 대 정도였다. 상향등을 켜고 달려도 내게 경적을 울리며 불빛을 보내대는 맞은편 도로도 이곳은 한적하다. 20년 전 그 이후로도 서너번 넘었던 하장길에 접어 임계로 달리니 이젠 강릉도 멀지 않았음을 느꼈다.

혹자는 너무 피곤하게 사는 게 아니냐며 걱정어린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난 이런 내가 너무 좋다. 이럴 수 있는 내가 참 다행스럽기도 하다.

오늘도 난 살아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