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딸아이는 모처럼만의 가족 동행에 참여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뉴에이지 악보를 꺼내들고는 연실 피아노 건반을 눌러댔다.
어른들도 하기 싫은 건 그 어떤 강요도, 권유도 먹히지 않음을 알기에 아직은 엄마를 졸졸 딸라대는 아들을 데리고 나들이길에 나섰다.
이미 찌푸린 하늘에 태풍주의보 소식도 있었기에 제법 시원한 바람을 기대하며 나섰건만 그저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쥐포를 찾는 아내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려는 듯 서둘러 경포를 행햐 달렸다.
참소리박물관 앞으로 펼쳐진 자그마한 경포꽃동산에는 손바닥보다 넓은 접시꽃이 한들한들 몸을 흔들었고
경포호 초입에 들어서니 바다에서 나온 사람들과 이제 막 들어온 사람들과 섞여 모처럼 복잡한 해수욕장 분위기를 느낀다.
경포습지로 향했다.
허균생가를 지나기 전 가끔 들러 커피를 마셨던 카페에 들러 아메리카노와 아이스티 한 잔을 주문하고는 본격적인 습지 탐방에 나섰다.
이미 더위에 지쳐 떠나 버렸는 지 눈에 듬성듬성 보이는 사람들 이외엔 그다지 눈에 띄는 것은 없다.
지난 번 왔을 때의 곱던 연도 이젠 조금씩 그 여운만 남기고는 하나둘 사그러져 간다.
온 몸을 불살라 그 곱디고운 색을 뽐낸 때가 바로 엊그제거늘 오늘은 그 화려함과 화사함은 그다지 보기 어렵다.
아들은 온 몸으로 땀에 절어 있다.
갑작스레 후두둑 내리던 빗망울을 피하려고 준비한 우산 두 개가 무척이나 거슬린다.
연밭을 지나 또다른 데크로 놓인 연꽃을 보고는 나룻배에 몸을 싣고 듬성듬성 돋아난 가시연을 보기로 했다.
분명 여덟 놈이 이리저리 피어났었거늘 오늘은 두 녀석만 고개를 삐쭉 내밀고 있다.
좀 참아보려 해도 그 더위라는 놈이 그다지 맞서기 좋은 녀석은 아니었다.
갈 때는 여유로워도 돌아가는 길은 재촉이는 발걸음에 땀이 두 배는 더 흘러 나왔다.
허균생가를 지나려는 데 아주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타블로였다. 촬영을 위해 이 무더운 날 딸 하루를 데리고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촬영중이라 한다.
TV로만 보던 모습과는 달리 무척이나 젊다. 하루도 제법 작고 귀여운 것이 오늘은 신기한 일이 여럿이다.
입에서 사진이라도 찍자는 말이 나오지 않는 나를 보고는 아내가 대담하게 타블로씨에게 아들과의 인증샷을 부탁했다.
뒷자석에서 연실 실실거리며 신기한 듯 받아들이는 아들 녀석이 무척이나 귀엽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택지의 어느 빙수집에 들러 과일빙수와 허니브레드를 하나 먹기로 했다.
텁텁한 식빵 위로 슬라이스 견과루가 놓인 크림을 발라 먹으니 맛이 제법 좋다.
나의 트라우마 나무젓가락 몸매 탈피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먹었다.
늦은 오후 산자락에 놓인 무지개가 필시 오늘 좋은 날이었음을 알려주려는 듯 곱게 자리하고 있고,
어제완 달라도 나름 그 강렬한 석양빛을 뽐내는 걸 보니 나른한 몸 만큼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듯 싶다.
[송정-허균생가-경포습지-허균생가-교동택지-귀가-남대천-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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